(참을만한 외풍인데도 피하고 싶다)

- 방범창살이 없던 창문 하나가 있는 방에서 내가 불쌍해진 적이 있다.

하지만 방범창살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도시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도시 안에서 살고 있고 안 불쌍해지려고 하고 있다.

방범창은 안전한 기분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기분을 우울하게 하는 흉물이다.

- 세상에서 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독서를 많이 한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독서를 많이 한다고 그런 사람이거나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정말 너무 편하기 때문에 더이상 내가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공부와 실천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명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믿고 싶고 의지할만한 것을 앞에 두고 수동적으로 있는 건 정말 편하다. 

원래 인간은 거인의 무등을 탄 난쟁이 아닌가? 이런 말을 여기다 붙이니 뭔가 어딘가에 미안해지긴 한다..

나 하나 편한 것은 한심한 면이 대부분이다. 

- 책이 자체발광을 한다면 그대로 들고 들어가 이불 속에 깊숙이 파묻힌 상태에서 읽겠지만

책장에 닿는 빛은 확보하고 두꺼운 이불로 최대한 몸을 덮는다. 이불 속에서는 최고최적의 포즈를 잡는다. 

손에 잡히는 책을 읽고 혹은 읽는 것처럼 글자나 그림을 멍하니 보고

그러다가 내용이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안가거나 눈이 아프거나 자세가 불편해지거나 외풍이 거슬리면

다 덮어버리고 숨는다.

책이 왜 그만읽냐고 나한테 뭐라고 하거나 이 부분 이해가 안가냐고 답답해하며 조급하게 가르치려들면 덮어놓고

숨을 수도 없을 것이다. 무책임. 어떤 것에도 내 책임이 없는 상태는 안전하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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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배로 받은 단호박 익힌 한조각)

05년 내가 대학교 2학년이 된 초봄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 있다.

아마 어색하게 어슬렁거리다가 남들의 당당한 발걸음이 옮는 바람에 들어갔을텐데

그 해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 한참 생각 중이었을 것이다. 

그 해 처음으로 나도 혼자서 뭔가를 만들어내야 했으니까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아직 급해지기 전이었던가.

큰 서점에 가면 센놈들이 나와서 나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 같은데

도서관은 고만고만 것들이 아주 조용히, 가만히 자기방에 있는 듯하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이 들켜 잘 쫄기도 

하는 
나는 거기서 안전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

햇빛에 부연 책장 사이를 걷는데, 꾹꾹 붙어있는 날깃날깃해진 누런 책들 중에 어떻게 그게 눈에 띄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꺼내든 그 책은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의 지속> 이었다.

그때 나는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작품의 주인공을 자주 생각하고 있었다. 

생략이 될만큼 된 색연필 애니메이션을 통해 본 나무를 심는 남자의 혼자 사는 집이, 스프를 떠먹는 나무 숫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굵은 손가락으로 도토리를 분류하는 조용한 저녁의 일과가 늘 가슴 속에 있었다. 

그런 삶의 모습과 비슷한 실제 삶의 자세한 기록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쩌다 우연히 만났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헨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이 보여준 삶의 방식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곧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소로우도 알 수 있었다.

소로우가 <월든>에서 "우리는 집 짓는 일의 즐거움을 영원히 목수에게 넘겨주고 말 것인가?"라고 물었다.

19세기에는 집짓는 목수라도 즐거움을 느끼니 다행일지 모른다. 

지금은 사람들의 잘잘못을 가리는데 염증을 느껴 '내 자식들은 생산적인 일을 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판사가 있는 세상이다. 

그것은 개인의 의식과 직업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하게 된 사건이었다. 

내 불안은 앞으로 갖게될 수도 있는 놓치기 아까운 무언가를 내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이게 누구에게나 보통이라면 여기에 나는 모순적으로 이대로가 너무 좋은데 이걸 지키기 위한 노력이 

직접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불안이 또 있다. 

난 컴퓨터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내 몸에 필요한 열량을 얻고 유지하는데 관련된 생산적인 일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불안한 것은 

내가 당장 팔 다리를 걷어붙이고 몸을 써 텃밭이라도 일구면 사라질까?

그 해에는 마음속에 아주 작은 유리공을 만들어서 그것만으로 좋았던 것 같은데

이제 오히려 그게 너무 작고 깨지기는 쉬워서 다루기 힘든 것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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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29일 자정 넘은 여름밤)


또 불안해져 벌떡 일어나는 밤이다.

앞으로 변해야 할 것들, 변하게 될 것들이 막연히 머릿속을 채울수록 그런 것들이 두려움으로 변하는게 

어이없는 모순이다. 

왜 난 이대로 있으면 안되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원치 않으니까.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지난 여름에 잠시 곁에 있다간 고양이 사진을 꺼내본다.

국산 검은콩으로 큼지막한 시멘트색(말은 이래도 정말 맛있어 보이는 부드러운 회색)의 두부를 만들어 파는

삼거리 두부집이
강진군 계라리에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새벽에 두부를 한정수량으로 만든다. 부모님이 저녁무렵

집에 가는 길에 들르면 
다 팔려 없기가 쉽기 때문에 미리 전화로 두세모 찜해두기도 한다.

주막, 슈퍼를 겸하는 이 두부집 가족 일원으로 늙은 암코양이도
한마리 있는 모양인데 나도 몇 번 그 게으른 실체를 봤다.
 
할머니가 주는 밥 먹으면서 오랫동안 눌러 살고 있는 자유부인.
그 고양이의 새끼를 아빠가 얻어 왔었다.

이름을 계라리의 라리라고 짓고.
부모님이 집에 고양이를 들인건 라리가 세번째던가.. 게으르지만 노련한 고양이가 집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바람으로 끝
난다. 라리는 한 순간 실수로 개한테 물려서 죽었다.

여름방학이라고 잠시 집에 와있던 나는 그 귀여운 놈이 살아있을때는 잔뜩 즐겁다가 죽어갈때는 대책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할 수 없는 일이었지 하면서 서울로 돌아갔다.

내가 앞으로 키우지도 않을 고양이랑 실컷 뒹굴면서 즐거워했다. 나도 이대로 여기서 사는거라면 그렇게 주접떨진 않았을

거다. 차분히 내일도, 모레도 장봐오고 밥주고.. 그러다 죽으면 눈물도 났을거다.
 
열심히 바쁘게 살면서 어차피 곧 안봐도 되는 일로 끝나고 그런게 계속 쌓여가는건 당연한건가?

난 늘 새로운걸 원해서 움직여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사실 제자리에 있고싶다. 하지만 반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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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6일)


내가 올해 잘한 일이 있다면 제시 셸의 책 <The Art of Game Design>을 만난 것이다.

날 안심시켜주는 이야기들이 많았으니까.. 항상 불안한 내가 이런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읽다가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를 인용한 부분에서 난 마음이 너무 충만해져 그 사람의 책들을 찾아보았다.

두툼한 빨간 책에 수많은 공간 구성 패턴들이 번호랑 이름을 달고 정리되어 있다. 난 또 그것을 보고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 건축가가 정리해놓은 수많은 유형들을 시험해보고 싶은 욕망에 심시티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난 그런 욕망을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넙죽 안심을 했다. 세계는 역시 정리될 수 있어..이런 생각을 하나 싶다.  

그 책은 <Pattern Language>라는 책이고, 이름없는 특질-
"Nameless Quality"이라는 말은 이 건축가의 첫번째 저서 

<The Timeless Way of Building>에서
나온다. 

Nameless Quality 바로 뭐라 정확히 집어내기는 어렵지만 그냥 독특하게 좋은 공간에 대한 느낌이다.

디자인이 정말 잘된 공간과 사물에 의해서- "당신은 편안하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고, 얼마나 좋은지 말할

필요도 없어진다. 즉 당신 자신이 정말로 그걸 즐기는 것이다" 라는 "이름없는 특질"이 생긴다.

그런데 이 건축가는 나중에 이 이름없는 특질을 15가지로 정리해낸다. 제시 셸 책에서 인용해놓은 걸로 예를 들면

"비단독성"-환경의 일부인 양 주위와 잘 연결되는 것. 같은 것이다.

내가 우연히라도 충만한 기분을 느낀 공간을 그 특질들에 일일히 맞춰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는 어딘가에서 느꼈던 그런 충만한 기분들을 간직하고 살고 있을 것이고 나도 평범하게 그렇다.

그냥 이렇게 하나하나 올리면서 더 잘 기억해내볼까한다. 잃어버리기 싫어서 
사진으로 많이 남겨놓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고, 얼마나 좋은지 말할 필요도없"어서 수많은 파일 속에 아무렇게나 버려놓고

오히려 점점 무거운 짐짝 취급했다. 내 모순과 불안이 이런 것에서부터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 모순없이 충만했던

기분들은 알면서도 버려놓지 말고 당장 조금씩 꺼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요새는 그런 기분을 어떻게 하면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까.. 정리하는 기분으로 나열해 보고 싶다.  
 

올해 초봄 부모님이 계시는 해남의 집에 내려갔을 때이다. 초봄이라 공기는 쌀쌀했었다. 하지만 햇볕은 따뜻해

지고 있어서 집 안에 있으면 그 햇볕이 따갑고 눈부셨다. 그런 빛이 그대로 내리쬐는 식탁에서 점심을 먹기는 힘드니까

아빠가 파라솔을 밖에 세웠다. 난 그런 아빠가 너무 좋았다. 창가에는 유자 하나가 놓여 있고 먹다남은 배춧잎이 접시

위에서 말라가고 있다. 식탁 위에 있는 빈 접시에는 찐떡찐떡한 쑥떡을 먹은 흔적이 남아있다. 그 쑥떡은 엄마가 그 봄에

이파리 뒤가 하얀 쑥을 직접 캐서 현미쌀과 함께 방앗간에 맡겨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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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0일 대한문 앞. 22일 재판 결과는 무죄 아니면 영웅의 탄생)


현실에서 나는 맨날 뭐가 뭔지 복잡하고, 엉망으로 쌓이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지만

분명하게 척척 옳은 것을 위해 힘을 모으며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 앞에 나서니

무임승차라도 일단 승차해서 힘을 보탠다. 

옳은 것은 서로 속이지 않은 관계에서 공평한 것 이라고 생각해본다.

나 스스로도 자신을 속이며 엉망으로 살면서 그래도 죽기 전엔 내 자신이 가지런하고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안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이런 나를 위해 나를 둘러싼 커다란 환경은 잘 돌아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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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9일 성남 기능성게임 축제에서)


 당장 보이지도 않는 모순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불안해하는 나는 결국 게임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한 세계가 한 눈에 다 보이고 내 손 안에 쥐어진 걸로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는 사실이 명백한 보드게임은

사랑스러워서 아주 한 입에 먹어버리고 싶었다. 상자를 열면 그 세계의 모든게 다 들어있고 잘 정리된 메뉴얼까지 있다.

한 벌의 카드, 주사위, 말, 지도.. 흩어져있지만 맞추면 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조각들..  한 세계의 구성요소가 명쾌하게 묶여

있을 수 있다니 여기서 그야말로 충만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은 오히려 날 불안하게 한다. 실시간 사람들과 상호작용이라니 실제 사회와 다를바가 없다. 그게 포인트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시 두려워서 못한다. 불특정한 많은 사람들과 방대한 데이터들을 다루며 상호작용한다니. 

내가 항상 불안에 떨며 두려워하는 일과 뭐가 달라. 

일단은 테이블탑 게임부터 차근차근 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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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양지시입니다. 

저는 대학교도 졸업했고 어떻게 지내다보니 이젠 대학원 학점 수료를 앞두게 되었는데.. 돌이켜보자면 엉망이었습니다.

대체 왜냐...어딘가로든 가볼 수 있도록 시간도 충분하고 먹고 힘낼 음식도 있는데 왜 난 거의 제자리에서 허덕이기만할까.. 

앞으로도 이럴까..? 언제까지? 그보다 대체 왜...? 

어쩌면 피차 비슷비슷한 질문들을 스스로 계속 만들어내고 뭐라도 만족할 답을 찾고 싶어서 허덕이느라 결국 지금 이러고 

앉아있나싶지만.. 그러니까 누가 던져준 질문에 따북따북 대답하는 것도 어려운데 질문부터 혼자 만들어내고 있으니 답까지


언제, 뭘 찾냐 이겁니다.. 난 왜 이렇게 고집스런 굼벵이같지? 괴롭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는 의심가는 일들이 많이

있습
다. 아.. 이런 식으로 의심목록 짜는게 나를 엉망으로 흘러가게 하고 있는 중요한 톱니바퀴 하나구요.. 
 
전 불안덩어리 입니다. 불안+모순입니다. 왜 모순이냐면.. 믿으라고 준비된 걸 애써 안 믿는것 같습니다. 

불신하니까 불안하고 불안하니까 불신하고.. 또 이상하게 알아서 믿는 구석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꼼수가 말하는 정의같

은 
..?ㅋ 또 부모님의 사랑..? 월든에서 보여준 삶..? 이런 큰 품 안에서는 잘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그 속에서 나도 뭔가 해볼 수도 있는 것인데.. 허덕이고만 있습니다.  

고집스럽게 말뚝 하나에 묶여서 뱅뱅돌며 자문자답을 반복하다가 결국 이런 질문을 만들어내고 블로그를 시작합니다. 

'무엇무엇을 이해 해달라고 잘 말해보는 시도를 난 왜 전부 헛수고라고 생각하는가?' 

이상한가요..? 제가 계속 이상해지지 않으려면 저 질문에 스스로 이렇게 답을 내야겠지요, 

헛수고가 아니니 말뚝 뽑아버리고 뭐든 가서 잘해봐!라고.. 에두르거나 회피하지말고.

그러기 위해서 연습합니다. 웹이 이래서 좋구요.. 디지털이 사랑스럽고...  

스스로도 아는 불안한 점들이 거무죽죽하니 바깥으로 흘러나오니 이제 확실히 괴로워졌습니다.   

제가 겪은 어떤 하루 이 후로 이상한 시점이 생기고 이젠 쓸데없이 커져버린 것같습니다. 

차차 나아져보기로하고..

그럼 반갑습니다. 누가보든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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